제주신화에서 가장 역동적이며 재밌는 이야기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농경신이면서 사랑의 여신이라 불리는 자청비. 이 자청비 신화에 욕망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정이 어신(없는) 정수남이는 우여곡절 끝에 목축신이 된다. 그러나 제대로 소임을 하지 않는 천방지축 정수남으로 인해 마소가 집 마당까지 들어와 골칫거리가 된다. 이로 인한 인간들의 불평을 들은 하늘나라 천지왕은 이승을 다스리는 아들 소별왕으로 하여금 이런저런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그때 생겨난 것이 바로 마소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하는 ‘정낭’과 ‘정주석’이다. 우린 흔히 ‘정낭’이라 통칭한다.
제주에는 거지, 대문, 도둑이 없다하여 三無(삼무)의 섬이라 불린다. 그런데 대문인 정낭이 있긴 한데 왜 대문이 없다하는가? 하고 의문을 품을 만하다. 아마도 신(神)이 마소가 들어오지 못하기 위해 만들어준 것이어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귀엽고 재기발랄한 대문인 정낭을 보고 누가 대문이라 했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제주사람의 심성과 미풍양속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 이해를 하면 좋을 듯싶다.
2~3년 전이라 기억된다. 우리 제주의 가옥에서만 볼 수 있는 대문인 ‘정낭’에 대해 아주 재밌는 접근 방식을 통해 정낭을 재해석했던 TV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그 이후 ‘정낭’을 새로운 기호학적 산물로서 ‘디지털 원류’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꽤나 재미있게 보았고, 수긍이 가는 내용이었다. 내용인즉, 양쪽에 구멍 3~4개를 뚫은 정주석이나 나무로 만든 정주목을 세우고 ‘정낭’이라 부르는 나무를 가로로 걸쳐놓는다. 일종의 외부인을 위한 민간 통신수단인 셈이다. 이 방식은 현대의 디지털 2진 부호 정보표시 방식과 흡사하다. 밑에 정낭이 하나만 걸쳐 있으면 001이며, 집안에 사람이 없으나 곧 돌아온다는 의미이다. 두개의 정낭이 걸쳐 있으면 011로서 가까운 곳에 출타중이며, 금일 중 돌아온다는 표시이다, 세 개의 정낭이 모두 걸쳐 있으면 111로서 집에서 먼 곳으로 출타했다는 표시인 것이다. 아무것도 걸쳐 있지 않으면 000으로 물론 집에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제주의 문화유산인 정낭을 두고 세계 최초의 디지털방식에 의한 정보표시라 하여 ‘디지털 원류’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이를 좀 더 자극적으로 표현을 하자면 기호를 통한 일종의 시각적 접근 방식의 유비쿼터스를 구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0’과 ‘1’로만 표현되는 디지털에는 중간값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타협을 한다거나 모호함이 없다. 오로지 이분법적 구조만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디지털세상은 삭막하다. 집단적 사이버 폭력, 해킹, 게임과 인터넷 중독, 바이러스 유포, 각종 불법 행위들…. 인터넷을 이용하는 보통 사람이라면 적응하기도 힘든 곳이 바로 디지털 세상이다. 특히 지구상에서 가장 발달한 디지털 공간에 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리는 특권(?)이자 피해인 것이다.
정낭을 통해 다시 디지털세상을 생각해 보자. 인간의 침입이 아니라 마소의 침입을 막고자 신(神)이 만들어준 대문 아닌 대문. 하나는 그대로 걸치고 하나는 내려놓는 인간적인 중간계의 존재. 생활의 단순기호로 인해 순박함과 인심의 삼무(三無)의 섬을 유지시켜준 정낭. ‘대문이 아닌 통신수단으로서의 인간적인 ‘정낭’이 더더욱 도둑 없는 세상을 만들었을 것이다’라고 가정을 하여 디지털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싶다.
[출처] ‘정낭’ 따뜻한 디지털 |작성자 쑥부쟁이
제주 전통문 '정낭' 디지털 정보통신분야 새 이론 발견 _ "정낭은 세계 최초 3bit 문“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문(門) '정낭'. 3개의 통나무를 어떻게 걸쳐 놓느냐에 따라 다른 정보를 제공하는 정낭이야말로 세계 최초의 '3bit' 방식이라고 이 교수는 주장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처럼 문에 대한 원리를 연구, 디지털 정보통신 분야의 핵심 이론을 설계하는 데 응용하고 있다.
이문호(64) 전북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는 제주 시골의 이색적인 대문형태인 '정낭(사진 참조)'을 세계 최초의 '3bit' 문이라는 설명한다. 3∼4개의 통나무(정주목)를 통해 집안에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를 외부에 알렸던 정낭에서 이 교수는 '예스(yes)'와 '노(no)', 혹은 '온(on)'과 '오프(off)' 원리를 발견했다.
정낭은 통나무가 한 개만 걸쳐져 있으면 주인이 잠깐 외출한 것으로, 두 개면 좀 긴 시간 외출을, 세 개 모두 걸쳐져 있을 경우 종일 출타 중임을 나타낸다.
3개의 통나무 원리로 주민들 간 통신체계가 구축됐던 것. 따라서 그의 과학적 상상력으로 보면 수백 년의 전통을 이어온 제주의 정낭은 세계 최초의 디지털 무선통신 시스템이었다. 새해 첫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한 이문호 교수는 이처럼 '문(門)'에 대한 무한한 과학적 호기심으로 세계적 발견에 성공한 사례다.
제주만의 특성에 대해 전북대 이문호 교수는 “제주 특유의 생활 풍습인 정낭(正木:제주에서 집 대문 역할을 하는 나무기둥)은 세계 최초의 인간 디지털 이진 부호 통신(HBCC)으로 인정받아 대전엑스포 행사에서도 전시된 바 있으며 이것이 바로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초기 버전”이라고 설명했다.